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구 성서초등학교 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 (문단 편집) == 유골 발견 == 세간의 관심이 거의 사라졌던 [[2002년]] [[9월 26일]], '''실종으로부터 11년 6개월 만에 도토리를 주우러 와룡산에 올라갔던 오우근씨에 의해 5명의 유골이 와룡산 기슭에서 발견되었다.'''[* 이전 버전에서 세방골 중턱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그 인근을 일반적으로 세방골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정확히 서구 상리동의 세방골과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. 그리고 산중턱이 아닌 산기슭 인근에서 발견되었다.] 이곳은 구 육군 [[제50보병사단]] 사격장 부지였으며 50사단은 이미 1994년에 [[북구(대구)|북구]]로 이전했다. 실종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불미골을 중심으로 수색하였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멀리 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여 벌어진 실책이다. 이 지역은 과거 군부대 사격장과 가까이 있어서 [[탄피]]가 많이 발견되었고 실제로 인근 어린이들이 탄피를 모으기 위해 와룡산에 자주 올랐다는 제보도 잇따르면서 일각에서는 [[오발탄]]에 의한 타살로 추정되었다. 발굴 이틀 후 대구경찰청은 수사본부를 다시 구성해 의욕을 보이는 듯했으나 경찰들은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 성급한 수사를 해 빈축을 샀다. [[대구달서경찰서]]는 시신 발견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.[* 2005년에 [[대구성서경찰서]]가 신설되어 현재 사건 현장은 대구성서경찰서 관할이며 달서경찰서는 [[월배지구|월배]]권 관할.] 경찰은 무슨 의도였는지 현장보존도 하지 않고 과학수사대도 부르지 않은 채 곡괭이 등을 이용해 땅을 파헤쳐서 현장을 훼손시켰다. 또 정확한 부검도, 현장감식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파헤쳐낸 유골만 봤으면서도 '''"상식적으로 봤을 때 타살 흔적은 거의 없는 거 같다."'''거나 '''"조난을 당했고 추위에 떨다가 [[저체온증]]으로 [[동사|사망]]한 것이다"'''라고 주장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.[* 당시는 [[1997년 외환 위기]] 직후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 시작하였으나 질이 높은 자원은 대부분 신참들이었고 공무원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을 때 채용된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.] 여기서 경찰은 사건 현장을 건드려서 크게 훼손시킨 것으로 드러났다. 당시 [[그것이 알고싶다]]에 보도된 영상을 보면 '''의경들이 삽질을 하고 형사들이 유골을 함부로 마대에 정리해 담아놨다.''' 이 꼴을 본 [[서울대학교]] [[법의학과]]의 이윤성 교수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할 말을 잃었을 정도. 그래서 [[https://news.joins.com/article/21969792|시신 중 감식반의 현장 감식을 받은 시신은 단 1구뿐이라고 한다.]] 결국 법의학자들의 부검 결과 둔기로 맞거나 흉기에 찔려 타살된 것이라는 추정이 내려졌다.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사망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당연히 범인도 알 수 없었으며 범죄 도구도 불분명해서 경찰이 여러 도구를 가지고 조사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. 다만 가장 유력한 범행도구는 용접 후 슬래그를 깨거나 긁어내는 데 사용하는 용접망치로 일명 깡깡이 망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